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당항포 해전 (문단 편집) == 제2차 당항포 해전 == ||<-5> '''{{{#white 이순신의 전투 목록}}}''' || || [[웅포 해전|제2차 웅포해전]][br](1593년 5월 2일) || {{{+1 ←}}} || '''{{{#white 제2차 당항포 해전}}}'''[br]{{{#white (1594년 3월 4일)}}} || {{{+1 →}}} || [[장문포 해전|장문포 해전]][br](1594년 9월 29일) || 수륙 병진책이 무산된 일본 수군이 거제도 내륙을 오가며 살인·납치·약탈을 일삼던 1594년 3월 4일(양력 4월 23일)에 행해졌다. 아군 연합 전선 124척이 참가한 대규모 해전으로, 삼도 수군 통제사 이순신의 치밀하고 신속하며 정확한 전략으로 압승을 거둔 해전이다. 연합 함대의 제6차 출전이자, 전투로는 12번째 해전이다. 3월 4일 새벽 이순신은 함선 20척을 거제도 견내량으로 보내 수비하도록 하고, 동시에 전라 좌수영과 경상 우수영에서 각각 10척, 전라 우수영에서 11척을 선발해 공격 함대를 편성하였다. 공격 함대의 사령관은 어영담을 임명하였다. 이순신은 나머지 3군 함대를 이끌고 [[학익진]]을 펼치며 함대 시위를 하는 한편, 다른 왜군의 지원과 도주로를 차단하기 위한 준비까지 철저하게 마친 뒤 공격 명령을 내렸다. 왜군은 조선 수군의 완벽한 전략 앞에서 손 쓸 틈도 없이 일거에 무너졌다. 먼저 어영담 함대에 의해 10척이 격파되고 불태워졌다. 이어 나머지 21척도 당항만으로 진격해 들어간 아군에 의해 모두 불태워지고, 패잔병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 육지로 도주하였다. 불의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대 편성, 신속한 기동력, 적 주력 부대의 퇴로 차단 등 이순신의 용의주도한 전략이 돋보인 해전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불멸의 이순신]]에서의 제2차 당항포 해전은 원래는 수륙 협공 전략이었으나 육군의 무미건조적인 태도로 인해 육지로 달아나는 왜군을 섬멸하지 못한 전투로 묘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